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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미술의 제 뜻과 민족미술인협회의 나아갈 길  들어가면서   우리 민족미술협의회가 사단법인체가 되어 첫해를 맞는다. 우리 단체는 지금 더할 수 없을 정도로 침체되었다. 이런 분위기를 사단법인이 된 것을 계기로 떨쳐버리자고 다 같이 결의하자는 의미에서 오늘의 이 모임의 주제를 '다시 민족미술을 이야기하자'로 하였다. 그러나 이 말을 올려놓고는 많은 회원들의 냉담할 반응을 생각하고는 심각해지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사단법인이 된 다음 새로운 집행부가 의욕을 가지고 출발했다. 우리 단체가 처음 시작했을 때의 기운이 어쨌는지 몰라도-아마 그 때는 폭압적인 군사독재의 탄압 때문에 오히려 사기가 높았는지도 모르겠다.-나름으로 확고한 것이었음은, 아직 모든 회원들에게 다 느껴지지는 않겠지만, 대단한 바가 있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그 사람이지 하는 태도가 한편에 엄존한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민족미술을 다시 이야기하자니, 지금도 저 사람이, 하는 냉담하기 짝이 없는 반응이 쏟아지는 것 같이 느껴진다.   우리의 단체 이름에 민족미술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고 해서 민족미술을 다시 이야기하자는 것은 아니다. 또 우리 단체에서 나이로나 경륜으로나 어른인 김윤수 선생님께서 이런 명칭을 주장했다고 해서 이를 관철하려는 것은 더욱 아니다. 민족미술은 아직 민족통일, 국토통일의 과제가 풀리지 않은 지금에도,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가 있는 것도 전혀 근거 없는 태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더욱이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 사회주의권의 잇따른 몰락에 의해 오로지 미국주도로 들어가면서, 오히려 숭미적인 분위기로 흐르는 분위기 속에서 민족에 대한 담론이 인기가 없는 것은 당연할 것이라고도 여겨진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짚어야 할 것이 많다.   최근 앞에서 말한 김윤수 선생님의 퇴직을 맞아 여러 회원과 관련된 인사들의 글을 모은 책이 나왔다. 이것을 보면, 이 책에 글을 쓴 많은 회원들이 민족미술이라는 말보다는 민중미술이라는 이름을 더 자주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실천했거나, 실천하려고 하고 있는 미술은 민중미술이 아니다. 민중적인 것을 지향하는지는 몰라도. 말장난 같지만 민중적인 민족미술을 지향한다고 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이런 상태는 우리 회원 극소수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민족미술이라는 이름보다도 민중미술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 불러지기를 원한다는 것은 사실 놀라운 면이 있다.   민족미술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민주적인 미술문화를 건설해야 한다. 즉, 예술의 민주화를 위하여 우리는 싸워 왔고, 싸워야 한다. 이런 상태를 위해서도 우리는 민족미술을 건설하기 위해 아직 많이 노력해야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민족주의를 반대하든 않든 관계 없이, 많은 저명한 민족주의 이론서에서 하나같이 결론 내리는 것이 있다. 민주주의는 민족주의를 거름으로 해서 핀 꽃이라고. 또 많은 서구의 19세기를 논하는 역사서에서 산업혁명은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꽃핀 민주주의 없이는 불가능했던 것이라고. 이를 우리는 왜 중국은 많은 과학적 발견을 이루었지만, 과학적 발전을 이루지 못했는가 하는 것에 대한 답으로 삼아도 될 것이다.   분명히 말하자. 민족주의는 기본이다. 민주주의와 생존이 가능한 발전-과거의 산업주의의 폐해를 극복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생존이 달린 문제다-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민족주의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민주주의가 작동될 때에는 민족주의가 필요 없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여전히 필요하다. 그래서 기본인 것이다. 왜 그런가 하는 이유를 들어보자.   1980년 광주의 학살사태는 정권에 눈이 어두운 소수 군인에 의해 조종되었거나 어쨌거나, 국가군에 의해 동족이 죽임을 당하기까지 한 비극 중의 비극이다. 그 소수 군인에게 민족주의 태도가 확립되어 있었다면 동족을 죽여 정권을 탈취하거나, 유지하려고 하는 발상 자체가 없었을 것이다. 혹 소수의 상층 군인에게 그러한 의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군대의 기간을 이루는 군사들이 민족적 태도로 무장되어 있었다면, 오히려 총뿌리를 그 지휘관에게 들이댔을 것이다.   우리는 많은 봉건통치와 독재통치가 바로 그러한 자각을 지닌 군대와 그런 군대를 보유한 국민에 의해 극복된 사례를 역사에서 본다. 민족주의 태도를 지닌 군대, 혹은 국민이 외국 또는 외국인을 배척하는 경우가 민족국가가 세워진 초기에는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민주주의 태도가 생기면서 극복되었거나, 극복되고 있다. 그래서 프랑스 혁명 후의 세계 최초의 국민군은 스페인을 침공하여 그 나라 국민을 무참히 죽였지만(고야의 판화작업에 잘 나타났듯이), 같은 프랑스 국민은 전후에 알제리를 해방하는 쪽으로 향했다(샤르트르의 많은 글에서 밝혀지듯이).   바로 이런 이유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직은 더 많은 민족주의 태도이지, 결코 시대착오이거나 폐지되어야 할 것이 아니다. 오히려 민족주의 태도를 배격하는 데에 우리 사회의 미성숙함이 있다는 증거다.     민족미술은 민족주의와 생각보다 관련이 많지 않다, 하지만 관련이 약하지만 분명한데, 그것은 한마디로 뭉뚱그리자면 둘 다 자기를 사랑한다는 데서 온다. 자기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남을 사랑할 수 있느냐 하는 명제에 우리는 자문자답해야 한다. 이제 세계는, 이른바 중심부 사람들조차 제국·식민주의와 인종차별 태도에 기인한 동화주의를 벗어나 모두 나름의 무엇을 바라고 있다(문화다원주의).   민족형식이라는 말에 대해서 좀 생각해 봐야 하겠다. 이것을 우리는 보통 민족 고유의 어떤 스타일로 이해하고 있다. 즉 민족양식과 혼동하고 있다. 민족형식은 민족양식과 구별된다. 민족형식은 한 민족사회/문화공동체가 자기 특유의/다른 공동체와 구별되는 바를 작품에 반영하는 것을 가리킨다. 민족미술이라고 하면 어떤 특유한 미술로 여기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즉 민족양식의 미술로 여겨지고 있다. 민족미술은 그보다는 자기의 삶이 배인,    미술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우리는 민족미술의 추구를 멈추어서는 안된다.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도, 통일이 이루어진 지 많은 시간이 지난 뒤에도 우리는 민족미술을 이룩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 역사에 공짜나, 그냥 지나치는 것은 없다. 민족주의 태도 없이 민주주의 태도는 싹도 트지 않는다. 민주주의 없이는 어떠한 발전도 헛되다. 그러므로 민족주의는 이 모든 상위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토대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민족적인 태도가 없이 다른 가치를 논하지 못한다.   한국을 사랑하는 많은 외부 사람들이 동족을 죽이는 정치지도자가 판치고, 군대가 존재하는 나라, 어떻게 이토록 비참한 환경 속에서 시가 있고, 예술이 있을 수 있느냐고 매우 의아해 하면서 묻는다고 한다. 이토록 비참한 환경 속의 예술은 우리가 아는 한 예술이 아니다. 자기가 사는 땅의 이웃이 부당하게 죽어가는데, 순수한 예술이니 예술성이니 하는 말이 있을 수 있는가? 우리는 이런 의문에 답하기 위하여 모였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우리 단체이름에 민족이라는 말이 없다고 생각해보자. 그렇다고 우리가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가? 우리들은 앞서거니 뒷서거니 내 발로 이 단체에 가입했다. 여늬 단체처럼 끼이지 않으면 미술로 밥먹거나 행세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가입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 단체에 가입하면 온갖 불이익이 쏟아진다.   나에 대하여 부산에서 대학마치고, 서울에는 대학원 진학 때문에 올라와서, 잠시 민미협에 얼른거리다가 재벌이 운영하는 미술잡지에 잽싸게 갔고, 그러다가 나와서는 다시 재벌이 운영하는 재단에 들어가 있다가 말고, 다시 개인미술관에 좀 다니다가 나온, 좀은 별나고, 그렇지만 단물은 다 빨아먹은 사람으로 여겨지지는 않는지?   민미협 회원이기에 당한 불이익은 네가 못나서 그렇지 하는 감을 넘는다. 나 뿐 아니다. 그래서 고민이 많을 것을 이해한다. 그렇지만 경우가 틀린 것은 따르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민미협 회원이 된 순간 양심적으로 살기로  결심하고 살아가야 한다. 그런 우리에게, 우리 회원 일부에 대하여 "제도권 보다 더 나쁘다"는 욕설을 회원이 아닌 사람들로부터 들을 때, 실망은 이만 저만이 아니다. 또 실력이 없어서 저런 민주화를 빙자하는 단체에서 굴러먹는다는 소리도 있다. 모두 한 6, 7년 전부터 귀에 맴돌기 시작하는 말들이다. 지난 총회 때, 총회에 참석한 한 회원은 자신에게 다른 젊은 회원이 "민미협의 오적의 하나"라고 한 말을 들었다며 참담해 하는 고백을 했다. 이런 말들이 얼마 전부터 들린다는 사실은, 굉장히 슬픈 일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이런 일이 빚어진 데에는 많은 원인이 있겠다. 또 왜 이런 말이 나오는지 따져보고, 점검해 보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그래야 민미협 회원 대다수를 휩싸고 있는 어떤 분위기를 걷어내고 새로운 도약이 가능할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이런 상태가 빚어진데 대하여 나는 다른 왈가왈부가 필요하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모임 내부의 민주주의가 모자라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여겨지며, 내부 민주주의가 확립되지 않을 때에는 언제나 다시 벌어질 문제라고 여겨진다.   민주적인 분위기를 위하여 우리는 모든 회원이 참여하는 총회를 제안한다. 그 동안 회원이 제법 많아지고, 갈래가 복잡해지면서, 또 지역에서의 참가 곤란 등을 해소한다 하여 총회는 대의원회의 모습을 띠었다. 이를 모든 회원의 참여로 돌리면 어떨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총회 등에서의 논의 때 철저한 민주주의적인 태도를 요망한다. 회원 서로간에 나이나 학연에 관계 없는 민주적 태도를 갖추고/요구하자. 사실 민미협이 다른 단체보다 우수한 것은 민주적인 분위기와 더불어 장르간에 차별의식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일반적인 잘못된 태도 때문에 괄시받거나 같이 자리를 하기를 꺼렸던 장르를 우리는 전혀 그렇지 않게 여겨왔다.   우리 사회에 팽배한 학벌주의 태도를 극복한 것도 우리다. 얼마나 자랑스러운 태도인지 모른다. 이를 더욱 견지해야 한다.   우리는 이름마저 '싸인'이라 부르면서 영어로 적거나, 한자로 적는 것이 대부분인 현실에서 우리 단체의 회원은 두 경우 거의 모두 약속한 듯이 한글로 적는다. 이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치인지 모른다. 누구도 강요하거나, 강조하거나조차 하지 않았던 사항이다. 그런데 우리 단체의 회원들은 약속한 듯이 이를 실천하고 있다.     일부 회원의 일탈적 태도에 대하여 앞으로 전과 비슷한 일이 재발되어서 현저히 우리 단체의 정체성을 거스른다면 제명 등의 조처를 하기를 제안한다. 민주적인 분위기를 높이기 위해서는 회원 내부의 권리 의식과 자기 존엄이 필요하다. 그런 다음은 모두의 책임이다.   우리 단체의 위상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현재 여러 가지 방안이 모색되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 벌어진 미국군의 코리아인에 대한 학살 모의재판이 있었음은 보도를 통해 모두 알리라 여겨진다. 우리는 주관하는 측의 제안을 받고 우리 회원들이 이전에 제작하여 발표한 작품 혹은 이 분야에 상당한 관심을 지닌 회원의 작품을 재판 현장의 인근에서 전시하는데 동의하였다. 주어진 시간이 하도 촉박하여 집행부가 급히 결정할 수 밖에 없어서 모든 회원에게 기회를 개방하지 못했다. 참가 여부를 놓고, 집행부 내부의 상당한 진통을 겪으면서 결국 참가하는 것으로 결정하고, 집행되었다. 이 문제는 이 번 기회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국내에서 공들인 기획으로 이 문제를 다룬 전시를 가질 예정이다. 개인의 의견이지만 이런 것이 우리 단체의 정체성을 온전히 실현하는 방안이라고 여긴다.   우리 단체의 위상을 정상화하기 위한 방안중 다른 하나는 8월에 있을 민족미술대토론회에 상정될 것이다. 또한 우리의 위상은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전에 비하여 말할 수 없이 높아졌다. 우리 단체의 각 분과를 이루었던 많은 회원들이 분화를 이루어 떨어져 나간 것처럼 여겨진다. 한국화 분과는 거의 소멸된 것처럼 여겨지고 있고, 만화와 일러스트라 하는 삽화와 그림책그림, 디자인 등의 분야는 떨어져 나갔거나 관계없는 것처럼 되었다. 한국화 분과는 분명 급속히 세력이 줄었지만, 다른 분과의 경우 상당한 발전을 이룬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쫄아들었다는 의식 속에 지내오던 동안 이 분과들은 커다란 성과를 나타내었다. 사진분야를 포괄하여 이들을 다시 통합하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중앙집권적인 구조도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서울이나 경기지역을 제외한  지부에 대한 온당한 배려도 절실하다. 앞으로 제안될 방안에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열쇠도 들어있다. 전용은 아니지만 우리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될 발표 공간에 대한 논의도 바야흐로 있다. 이와 별도로 인터넷을 실질적으로 활성화해서 이런 문제를 극복하는 중요한 기제로 삼을 것이다.   회원들에게 다시 한번 마음을 모아 전진할 것을 당부한다. 우리는 민족미술이라는 깃발이 땅에 떨어져 짓밟혀도 이를 추구할 것이라는 각오로 나가자.   - 최석태(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