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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미술 대 토론회에 붙여  민족미술 대 토론회에 붙여                                          강 행 원 1. 민족미술의 지난날을 돌아봅니다. 잠깐인 것 같은데 벌써 20여 성상이 흘렀습니다. 이 땅의 민주화를 가로 막던 80년도 군정 폭압의 퍼런 서슬 앞에서 진보미술인들은 총칼보다도 강한 붓을 거머쥐고 그 저항에 맞서 불타던 열기 말입니다.   그 열기는 지금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없지만 곡절 많은 세월의 부침은 민주화의 회복을 맞으며 경제 한파의 또 다른 어려움이 겹쳐 문화지형에 많은 변화를 몰고 왔습니다. 창작지평의 지지기반이었던 중산층이 무너져버린 예술활동은 생활고를 위협받는 난장의 국면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때 필자역시도 민미협을 맡아 운영하면서 그 어려움을 체험한 경험이 있습니다. 문화지형의 이와 같은 변화는 진보미술인들도 어쩔 수 없는 제도의 틀 속으로 새로운 둥지를 틀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민미협은 새로운 지형에 맞는 법인의 옷을 갈아입고 더 발전하는가했더니 국고지원이 전혀 없을 때보다도 더 나아진 것 같지 않았습니다. 문제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역동하지 못하고 여전히 침체의 일로를 면치 못했다는 생각입니다. 또한 아시는 바와 같이 2003년 서울민미협은 대표와 회원들의 갈등으로 그 끝이 좋지 않았습니다. 전국 민미협 집행부는 열심히 했는지 모르지만 지난날 우리의 불타던 그 정신은 어디에 있으며,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관심으로 던져진 그간의 침묵이 참으로 길게 느껴  졌습니다. 그래서 더욱 21세기의 민족 미술의 새로운 담론을 제기해온 개혁위의 대 토론회 마련의 장을 크게 공감하였던 바입니다. 그런데 2004년도 정기총회에서의 대 토론이 모처럼 많이 모인 집회였는데 시간관계로 원만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새 집행부에 의해 미루어져 결론을 내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개혁위의 성효숙님이 제기해온 담론, 우주의 근원에 대한 물리학의 비유를 든 생태와 더불어 우리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야 하는가의 영성문제까지 뚫어본 종교적 철학적제시의 이론무장이 범상하지 않는 그 글 솜씨에 경위를 표합니다. 그러나 세부적인 토론 주제에 붙여진 제시에서 “물질만 풍요로운 생산이 아니라 문화를 폭발적으로 생산해내는 자본의 거대한 힘 앞에서 진보예술은 어디에 있고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 진보미술이라고 하는 민미협 조차 자본주의 힘 앞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 이미 자본주의의 꽃인 상표가 되어 버린 것은 아닌가? / 문화권력의 주류가 되어 표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  민미협 회원들은 왜 많이 떠났으며 또한 무관심할까? / 남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 민족미술이란 이름의 그릇은 상표로서 유효한가? / 민미협의 계급구성은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변화 되었을까”   하는 등의 의문을 모호함일지라도 알고 싶다. 고 조심스럽게 제기해 주셨는데 사이버공간을 이용하여 부족한 저 개인의 뜻을 개진 하고자 합니다.   2. 그러나 여기에는 사상적인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제시되어 있기 때문에 저 또한 조심스러운 점이 없지 않습니다. 특히나 유물변증법적인 인식의 관점에서 자본계급과 대립한 노동계급을 민중의 주체라고 보는 시각과 또 그러한 연장선에서 개발된 민중성이나 계급성과 당파성을 따지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인류역사를 통해서 가장 치열한 이데올로기 싸움이 무엇이었던가를 돌아보면 유물론과 유심론의 싸움이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이 땅에서는 지금도 좌우익 시비가 아직 가시지 않고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의 아픔을 안고 있습니다. 이러한  불행한 씨앗이 우리민족에게 뿌려져 화갑을 바라보게 되는 이 서글픈 한을 언제쯤 풀 수 있을지?   남북의 소통이 막힌 것은 아니지만 아직도 옹색할 뿐이며 정치개혁마저 실종하고 있는 현 단계, 정말 눈과 귀를 틀어막고 싶을 정도로 한심한 위정자들의 정치싸움을 보고 있습니다. 게다가  반공법의 낡은 작태로 얼룩진 갈등은 진보와 보수의 정치적 대결이 아직도 멈추지 않고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르는 망령으로 남아있습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사회주의 체제가 지닌 마르크스의 유물변증법적 기조위에 세워진 공산사상의 유물론의 본질을 다시 음미 해 봅니다.   “모두가 다 물질 뿐이다. 마음은 결국 우리 육체에 있는 뇌의 반사에 불과하다.” ‘즉 인간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들의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규정한다.’ 라는 이러한 이즘의 쟁점은 거의 한 세기가 가까워 오는 동안 민주주의를 반대하는 가장 대표적인 이데올로기로서 팽팽한 힘의 대결을 펼쳐왔습니다. 그러나 1917년 볼셰비키 혁명으로부터 소비에트연방공산당이 해체되는 1991년 이후에는 사실상 이러한 논쟁은 힘을 잃고 말았습니다. 유심론을 지향한 민주국가의 종교적인 입장에서는 백년도 지탱하지 못하는 이러한 논리를 진리로 보지 않을뿐더러 더 이상 비판의 대상으로도 삼지 않습니다.   세상사의 어떠한 것도 영원한 실존이 없듯이 물질이 허망한 것이기는 하지만 가급적이면 마땅히 평등하게 경제적으로 공정한 분배를 해야 하는 것은 시비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공정한 분배만이 문제가 아니라 그에 앞서 인간성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부터 풀어야 하는 것이 또한 종교성의 본질이기도 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유심론에서는 인간성의 문제만 바로 풀어버리면 다른 문제는 저절로 풀리기 마련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한 세기 전의 치열한 인류의 역사는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양상 속에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공존해 오던 과정에서 사회주의는 몰락하였고 자본주의는 중천에 뜬 낮달처럼 건재하지만 자본주의 역시 영원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불확실성에 묶어두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는 자본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세계최강의 패권이기주의의 독주를 견제할 수 없는 한 그 횡포에 불안을 면할 길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제아무리 평화를 내세운 민주주의라 하더라도 미국 같은 깡패국가가 있는 한 유물이나 유심을 막론하고 인간성의 회복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은 법과 제도나 이즘보다도 우선하는 것이 그것을 활용하는 양심이 문제가 되기 때문에 인간성회복에 대한 문제는 그 성패를 가름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욱이 인간성 회복에 대한 문제는 민주사회의 종교성에 대한 영성과도 맞 닿아있는 근원적인 진리이므로 현대 문명의 과제이자 도리이기도 한 것입니다. 소위 마르크스의 학설이 주장한 자본주의는 반드시 멸망한다거나 또한 종교는 마약과 같은 것이라는 주장의 이론은 어떻든 적중하지 못하고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이 여려가지 과학적 발견들과 법칙들이 현실에 부합하지 못한 것들이 많이 나타나서 실패하고 만 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가졌던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서 어떻게 인간성을 발견하고 확충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은 여전히 그대로 유효하며 일면 부합하는 일이기도 할 것입니다. 3. 21세기의 오늘을 살아가면서 무슨 이즘이나 무슨 주의의 논쟁보다 이제는 우리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갈 것인가 하는 문제보다 더 큰 철학적인 의제는 없다고 봅니다. 물론 종교의 영역이긴 하지만 미술문화 또한 제외될 수 없는 절실한 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는 우리의 삶 속에서 욕망으로 빚어진 심원의 의식이 지니고 있는 번뇌 망상에 의한 시비분별을 몰아내는 것이 행복한 진보의 길이라고 여겨지기도 합니다. 아직도 물질 뿐이라는 유물주의 꿈은 인간의 영성에 대한 생사의 문 앞에서는 아무런 힘도 쓸 수 없는 한갓 허깨비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디까지나 막시즘은 역사적 산물이며 학문적으로 유효한 것이지 진보미술이라는 이름아래 민미협의 이념을 그 동일사상으로 몰고 갈수는 없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그렇다고 지금 우리가 몸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를 이상사회로 생각하는 것도 아니지만 말입니다. 막시즘의 무너진 실체를 놓고 그것을 복원하여 다시 이상사회를 꿈꾸는 또 다른 포장은 반대 합니다. 해서 유물사관의 실체를 회복하는 운동논의가 민미협의 과제가 되어서는 안 되며, 또한 창립정신에도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민미협 정신의 진보미술은 해방 이후 민족사의 쓰라린 수난이었던 일제시대의 악랄한 식민제도를 답습한 산물들을 걷어내는 것이었으며, 어용제도미술권이 빌려온 갖가지 억압적이고 장애적인 요인을 재거하고 군부독재를 몰아내어 민주적 삶에 기여할 목적을 부여하기 위한 창작정신의 의(義)였다고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법인의 옷을 입지 않았을 때는 어디에도 걸림이 없이 자유스러울 수 있었던 점이 민미협 정신을 다하는 문화운동의 장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제도권 속으로 들어간 민미협은 자본주의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또한 문화 권력으로부터도 해방될 수 없는 입장이 되어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민족미술이란 이름의 그릇은 상표로서 유효한가에 대하여는 사실상 민미협의 태동이 민예총 탄생의 불씨이기도 하다는 사실이 중요한 문제가 될 것입니다. 민미협 정신은 민예총과 같은 노선을 걷고 있으며 민예총 또한 민족이란 상표의 간판으로 제도의 법인 옷을 입었습니다. 또한 민미협 역시 같은 상표로 법인의 옷을 입었기 때문에 상표를 바꾸는 데는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민예총 상표부터 손질을 해야 하며 법적절차도 간단하지 않을뿐더러 민미협이 독자 노선을 걷지 않는 한 민예총을 움직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법인을 탈퇴하지 않는 한 이미 미족이란 이름은 제도의 틀 속에 지울 수 없는 상표로서 바꾸기가 어려운 입장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해서 대단히 죄송한 생각이지만 민미협도 20여년이나 늙다 보니까 내용상에 있어서 세대 차이일 수도 있지만 토론회의 주제내용의 방향을 좀 바꾸었으면 하는 제안을 해 봅니다. 1. 민미협의 정체성은 과연 무엇이며, 또한 어떠한 문제를 안고 20여년의  세월을 지탱해 왔는가?   2. 민미협 회원들은 왜 많이 떠났으며 또한 무관심하며 남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3. 본 협회회원 상호간의 친목도모, 권익옹호, 복지향상 등 모든 제반사업 의 협회기능은 제대로 되고 있었는가? 4. 민족미술의 창조적 발전을 향한 다양하고 통일적인 이론과 실천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5. 참신한 동참미술인들을 발굴하고 여러 장르의 풍성한 작품의 수확을 거두는 노력은 있었는가? 6. 분단현실에 대한 냉엄한 통찰과 통일로 가는 길의 문화동질성 회복에 대한 교류가 잠자는 이유는 무엇인가? 7. 제도권 속에서의 민족진영의 진보미술이 가야할 방향은 어디이며, 우리의 앞으로의 할일은 무엇인가? 8. 문화지원자금으로 국제전을 유치하여 회원들에게 돌아가는 균일한 기회가  되었는지? 기획자의 입맛에 맞추고 말았는지? 9. 제도권에 들어간 이상 협회 발전을 위해서 회원확장은 당연하지만 회원 배가에 대한 대안은 어떻게 했으면 좋은가? 10.침체의 이 현실을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으며, 우리의 모습을 홍보하고 실천할 적극성은 무엇인가?   이상과 같은 제안을 통해서 민미협은 무엇 때문에 침체의 일로를 걸어야 했는가 하는 반성과 자각이 필요하며, 현실에 맞는 절실한 고민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끝으로 민미협 송년회가 저의 형님 49제와 겹쳐 참석하지 못함을 아쉬움으로 남기며 앞으로 새 집행부에서 다시 있을 민족미술 대 토론회의 제안을 올리는 것으로 송년 모임을 대신합니다. 민미협의 무궁한 발전을 빕니다.                       2003년 12월 28일 윤산화선재 우거에서 윤산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