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술개념의 혼란과 미술운동의 가능성 미술개념의 혼란과 미술운동의 가능성
최태만(미술 평론가)
90년대는 국내외적으로 과거와 다른 질서와 이념에 의해 전개되고 있다 소비에트연방의 해체와 사회주의 진영의 붕괴 등과 같은 세계 정세의 급격한 변동과 첨단전자 무기의 실험장처럼 보여졌 던 걸프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달라진 전쟁의 양상과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이념의 차이를 떠나 각국이 이합집산하는 현상을 보여주었으며 유고슬라비아. 캄보디아, 소말리아, 팔레스타인 등지에 서 한층 고조된 민족분규의 경우처럼 세계 경찰로서의 미국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되는 대 신에 증대된 지역가느이 갈등과 인종세탁, 지역주의 경제기구의 형성에 따른 새로운 경제논리의 대두 등의 국제적인 정치환경의 변화는 세계 인식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적으로도 현실지향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중산층의 급격한 확산과 이른바 문민정부 의 출범, TV와 비디오를 포함한 개인용 컴퓨터의 대량 보급에 따른 정보화 사회로의 진입 등과 같은 내적인 요인에 따라 현실문화에 대한 새로운 전망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걸프전을 마치 스타워즈처럼 '실감나게' 위성을 통해 세계 각국에 현장중계하였던 CNN 뉴스를 통해 확인한 바와 같이 오늘날 전쟁의 참상조차 '정보'란 포장에 의해 전달됨을 목격한 바 있다. 언론이 첨단무기의 성능에 대해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을 때 엄청난 인명이 그것에 의해 살 상될 수 있음을 망각하고 마치 비디오용 영화처럼 사강의 폭력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도록 우리 의 감각이 비정상적으로 반응하도록 조장하였던 것이다. 어쨌든 걸프전은 90년대를 살고 있는 우 리에게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첫째, 소비에트연방의 붕괴로 세계 질서가 미소란 양대 강국에 의해 균형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미국의 구도에 의해 재편되고 있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관여를 거부하는 지역주권주의의 강화가 두드러지며 둘째, 월남전 이 후 세계 각국에서 끊임없이 일어났던 소모전에 개입해온 미국이 서방의 여러 나라를 중심으로 연 합군대를 형성, 전쟁에 참전하였으나 결국 미국이 주도권을 장악하였으며 미국과 일본, 프랑스 등 의 전쟁 산업의 한 면모가 공개되었으며 셋째, TV의 영향력이 실로 엄청나다는 점이다. 이중 TV 는 우리의 사고와 취미, 생활방식, 세계에 대한 이해방식까지 바꿔놓을 수 있다는 엄청난 지배력 을 소유하고 있으며, 1980년대 초반 컬러 TV의 보급과 비디오 녹화 및 재생기의 보편화 현상에 따라 TV 대중문화와 특히 컬러세대인 청소년들의 문화형성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으며 조만간 CATV의 확산으로 문화에서 영상이 차지하는 비중이 보다 증대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영상산 업의 거의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는 미국의 영화 비디오 개방압력에 맞선 프랑스의 저항이 다국적 자본의 막강한 지배력 앞에 굴복하는 대부분의 오락 영상 산업을 미국으로부터 수입하여 즐기고 있는 우리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도록 만들고 있다.
결국 세계는 변화학 있으며, 우리 또한 그 변화의 국면에 처해있다고 할 수 있는데, 80년대 말 동구권의 개방과 개혁, 소연방의 해체,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수교 및 이른바 북방외교의 전개 등 으로 성급하게 '이데올로기의 증언'을 합의하는 분위기를 목격할 수 있는데 민족민중미술의 소강 국면이 이런 정세와 결코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민선대통령의 탄생과 더불어 그동안 비합법단체로 규정되었던 '민예총'이 사단법인으로 등록하고 아바나비엔날레, JAALA 등 을 통해 부분적으로 접촉하였던 북한과 최초로 코리아 통일전을 개최하는 등 80년대와는 다른 분 위기를 느낄 수 있다. 나아가 민중미술진영의 새로운 활로 모색이 80녀대 정치적 변혁기의 그것 처럼 정치투쟁적, 집단적, 구호적 양상으로부터 자기실현적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도 주목하여야 할 것 같다. 민중미술운동 제 1세대의 개인전이 부쩍 늘어났고, 이념벅 지향성의 갈래 또한 다양해진 것이 우리 미술이 처해 있는 현실이지 않은가 생각된다.
이러한 국내외적인 정세 및 문화 환경의 변화된 국면은
첫째, 자주, 민주, 통일을 지향하던 80년대 민중미술운동의 성격에 대한 반성 및 이념의 재정립 을 요구하고 있으나 그것이 오나전하게 성취된 것이 아닌 만큼 운동의 이념적 지향성은 유효한 것으로 생각한다.
둘째, 미술의 전반적인 이론화 현상이 두드러진 만큼 적절한 대응논리의 확보가 필요하다. 최근 국내에서 활발하게 논의되었던 포스트모더니즘이 이제는 민중미술조차 그 논의의 연장선상에 있 는 것처럼 취급되는 것을 목격할 수 있는 바 그 차별성를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다. 특히 시각 매체에 대한 방만한 접근방식이 매체개발의 차원을 넘어서 매체 남용 혹은 매체에의 굴복을 야 기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검토해야 한다.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통적인 창작방법론은 수정되어야 한다. 회화나 조각 등의 장르가 가 진 자기 갱신력과 복원력, 소통의 힘은 소멸되지 않을 것이지만 그것을 유일한 해결책으로 신뢰 하는 것은 현실로부터 유리될 위험이 있다. 컬러 TV와 전자 오락, 상업광고와 카피라이터, 컴퓨 터를 만지며 성장한 청소년 세대들의 문화적 감각, 세계에 대한 이해 방식, 삶의 패턴은 독서란 전통적인 학습방식에 의해 성장한 기성세대의 그것과 분명히 다른 만큼 민중미술의 계승이란 측 면에서도 이러한 변화의 여건을 인정하고, 새로운 방법론의 개발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숙고하여 야 할 것이다.
넷째, 미술제도에 대한 새로운 반성과 위상의 정립이 요구된다. 어차피 민중미술 지체도 제도이 며, 벌서 제도화의 길을 걷고 있다. 미술의 생산으로부터 전달, 유통에 이르기까지 제도의 개입없 이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따라서 그 활용방식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민예총의 법인화, 통일 미 술전에 대한 정부의 지원, 국립 현대미술관에서의 민중미술 전시의 개최 등은 외형적으로 드러난 것에 불과하며, 80년대에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미술교육(시민미술학교, 학교제도 속에서의 새로운 교육방법의 개발 등)은 발전적으로 계승되어야 한다.
다섯째, 미술운동의 심화 및 저변확대의 노력이 필요하다. 민주화란 목표가 분명했던 80년대 미 술운동은 오로지 '운동의 강화'에 매진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미술운동이 한층 가속화되고 고 양되고 있던 시점에서 그것의 목적과 방향에 대한 여러 차원에서 이루어지긴 했으나 목표의 정당 성 앞에 섬세한 자기반성의 기회가 차단당하지는 않았는지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외면적으로 정체기라 할 수 있는 지금은 과거의 미술운동을 반성, 점검, 평가하고 새로운 전망을 수립하는 기 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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