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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대·전 되돌릴 수 없는 역사라면 다시 시작해야 한다  안성배 | 민예총 정책기획팀장   -------------------------------------------------------------------------------- 안영자<고향>. 현 미술협회 이사 정성태에게 부탁하고, 정성태는 1차 심사의원 허용에게 재부탁하고 입선 후 2차 심사위원 박재현에게 다시 부탁하여 특선에 당선된 혐의 임환길 <송학>. 현 문인화분과 위원장 민이식에게 부탁하여 특선에 당선되자, 그 사례비로 돈 500만원 전달혐의. 임영숙 <연>. 손광식이 그린 그림의 체본을 복사하여 출품한 후 입선에 당선된 혐의.   지하운 <등나무>. 현 미술협회 이사 정성태의 친동생 정순태에게 부탁하면서 정순태의 그림을 1000만원에 매립하여 주고, 정순태는 현님 정성태에게 부탁해 다시 정성태는 1차 심사위원 허영에게 부탁해 입선하고, 다시 2차 심사위원 박재현에게 순차적으로 부탁하여 특선에 당선된 혐의. -------------------------------------------------------------------------------- “미술대전과 국제전의 운영개혁, 파격적인 심사제도, 공약추진 특별위원회 신설, 지역미술 발전 등 한국미술 발전을 위한 숙제가 한 보따리입니다.” 1998년 1월, 미술대전을 주관하는 한국미술협회(미협) 제18대 이사장(임기 3년)에 당선된 현 홍익대 교수 박석원 씨의 말이다. 선거 당시 박씨의 선거 기획팀 이름은 “문화비전-개혁의 함대”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박씨는 2001년 6월 29일 미술대전 심사비리 사건발표 당시 입건된 비리혐의자 중 한 사람이었다. 박씨는 이사장의 직위를 이용하여 낙선자 그림 3점을 입선시킨 혐의를 받았다. 박씨의 이사장 취임사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지난 6월의 검찰발표는 충격적이었다. 적어도 그의 취임사를 곧이곧대로 믿었다면 말이다. 그러나 미협의 역사와 미술대전의 속사정을 훤히 아는 이들은 그리 놀라울 것도,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는 반응을 보였으리라. 그만큼 미술대전을 둘러싼 비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요, 깊은 뿌리를 간직한 뼈대있는 전통(?)이다.   왜 이런 악취 가득한 전통이 만들어진 걸까. 도대체 어떤 문제가 있길래 꼬리를 물고 이런 비리가 상존하는 걸까.   ........2001년 6월 30일 2001년 6월 29일 경찰청 수사국 특수수사과는 한국미술협회 주관 미술대전 심사와 관련된 비리사건을 발표하였다. 그 다음날인 6월 30일 『민족예술』 편집실과 『일일문화정책동향』 편집팀은 익명의 미술계 인사로부터 두툼한 문건 하나를 전달받았다. 문건에는 미술대전 심사비리 사건과 관련된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경찰청의 발표보다 더 구체적으로 비리 대상자 인적사항과 실명을 거론하고 있었으며, 그 수법들이 자세하게 기재돼 있었다.   문건을 통해 양 편집팀은 미술대전 심사비리와 관련된 구체적인 사실을 알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사건의 진실에 더 근접할 수 있었다. 문건에 담긴 내용을 개략적으로 소개하면 이렇다.   매년 봄(비구상계열), 가을(구상계열) 2회에 걸쳐 동양화, 서양화, 조각, 판화 등 4개 분야에 대하여 실시하는 미협 주관 미술대전에서 심사 관련 비리가 상존하고 있다는 첩보에 따라 경찰청이 수사에 착수하였다. 미술대전은 미술 분야의 신인 등용문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서 입상을 하면 작가로서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는 권위있는 대회이므로 가장 공정하고 엄정한 심사에 의하여 입상자가 선정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금품수수 및 학연·지연 등에 의해 각종 비리가 만연해 있다. 수사결과 배임수재 및 업무 방해 등의 혐의로 대상자 25명을 입건하고 계속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비리수법을 보면, 금품을 수수하고 심사위원과 화가를 사전에 연결시키는 등 고전적인 수법에서부터 낙선작을 입선작으로 둔갑시키고, 그림을 대신 그려주거나 스승의 모작을 출품하는 등의 신종 수법에 이르기까지 그 유형도 각양각색이다.   놀라운 것은 비리에 연루된 사람들의 인적사항과 미협에서의 위치다. 25명의 비리 대상자 대다수가 미협과 직간접적으로 조직적 관련이 있는 인사들이고, 미술협회 전현직 임원도 10여명이 넘는다. 글머리에 언급한 전직 이사장 박석원 씨 외에도 현직 이사장인 곽○○(51세) 씨를 비롯 정○○(54세), 민○○(60세), 이○○(73세), 차○○(43세) 등 전현직 이사들이 대거 포함돼 있다.   이 정도면 그간 속사정을 훤히 알고 있던 사람들마저도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이 정도의 충격만으로 충분하다. 수사를 종결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미협과 미술대전의 썩을대로 썩은 실체를 아는 데 부족하지 않다는 얘기다. 그러나 사건의 전말이 드러난다 하더라도 그것은 기껏해야 진실의 한 단면에 불과할 뿐 본질은 아닐 것이다. 본질은 비리사건 자체에 있지 않다. 수사강도를 높이고, 비리 혐의자를 중형에 처한다 하더라도 비리는 반복적으로 우리 곁을 맴돌 것이다. 본질은 미협이라는 조직과 미술대전의 구조에 있기 때문이다. ..........미술협회라는 조직과 미술대전의 구조   미협은 1961년 군사정권의 예술단체 통합조치로 대한미술협회를 흡수통합하여 창립된 단체다. 흥미로운 것은 대한미술협회가 미협의 모태였다는 사실이다. 대한미술협회는 조선미술가동맹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해방 직후 만들어진 조선미술협회가 이름만 바뀐 것이다. 1956년 소수의 미술가들이 대한미술협회로부터 분리돼 나와 따로 조직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한국미술협회다.   대한미술협회와 한국미술협회의 분리에는 홍익대파와 서울대파의 싸움이라는 학연에 얽힌 미술계의 고질적 계파쟁투가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이때부터 줄서기, 줄타기, 줄다리기, 줄세우기, 줄엮기 등 예술적 성취도와는 무관한 그릇된 관행이 자리잡게 되고, 자연스레 온갖 비리가 난무하게 된다. 한국미술협회가 5년만에 모태인 대한미술협회를 흡수할 수 있었던 배경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미협이 미술계의 단일조직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군사독재 정권의 비호였다. 군사정권은 미협이 군사독재에 협조하고, 심지어는 찬양함으로서 보인 충성심의 대가로 대한미술협회를 흡수통합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군사정권에 대한 충성심은 광주 시민 수천명을 죽이고 권력을 잡은 전두환 정권에 대한 지지표명을 통해서 또다시 드러난 바 있다. 이 두 가지 사실은 현재의 미협을 빚어내는 데 톡톡히 한 몫을 했다. 여전히 서울대-홍익대 양 계파의 보이지 않는 싸움은 공공연한 사실이며, 대중을 위한 예술은 뒷전에 밀려 있다. 오히려 사리사욕을 위해 예술을 악용하는 데 더 큰 관심을 보여온 것이 미협의 역사이며, 현재 모습이다. 이번에 터진 비리 사건은 단적인 예에 불과하다. 전현직 이사장들이 대거 비리에 가담한 것은 미협이 이런 비판으로부터 어떤 변명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썩어 있음을 날카롭게 웅변해 준다. 이러한 조직이 1989년에 문예진흥원으로부터 미술대전 주최 및 주관권을 위임받았으니 결과는 어찌보면 뻔한 것이었다. 미술대전의 전신인 국전 시절부터 보이지 않는 계파 싸움과 사적 탐욕 때문에 잡음이 끊이지 않아 왔지만, 미술계 계파싸움의 온상인 미협이 미술대전을 주관하게 됐으니 비리가 만연한 것은 당연한 순리라고도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미술대전은 신인들의 등용문으로서 입상 자체가 곧 실력있는 작가임을 증명해 준다. 따라서 미협에 있는 각 계파들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계파사람을 ‘실력있는 작가’로 등용시키려 했을 것이다. 그래야만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계파의 이익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최근의 비리는 여기에다 금전적 보상이 보강된 양상을 보인 것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관계자들이 예술적 관심보다는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계파의 사적인 이익을 대변하려다 보니, 심사위원 선정의 투명성 및 공개성, 심사기준의 공정성 등을 중심에 두려고 하지 않는다. 심사위원, 심사기준, 심사과정 등은 어떤 대회·시상제도를 막론하고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당연히 공개되어야 하며,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으로 합리적인 과정을 밟아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미술대전은 주관단체의 태생적 한계로 인해 그럴 수 없었고, 현재에도 여전히 그러하다.   ..........부정적 문화권력의 표본, 미술대전 미술대전 심사비리의 핵심적인 본질을 표현하는 가장 적확한 용어는 역시 ‘문화권력’일 것이다. 문화권력은 문화예술 분야의 지식과 주관 단체의 권위가 한 데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조화로운 앙상블이다. 문화권력은 문학상이나 신춘문예, 미술대전, 콩쿨 같은 각종 시상·등용제도를 장치로 활용한다. 이 장치의 핵심은 해당 분야 지식의 특수한 전문성이며, 이러한 특수한 전문적 지식의 권위를 등에 업은 사람들이 ‘심사위원’의 직함을 얻는다. 심사위원들의 전문 지식이 지닌 권위와 주관 단체의 권위는 변증법적 상승효과를 일으키며, 대중들로부터 스스로 권력을 획득한다.   문제는 이러한 권력의 속성이다. 문화권력이 지닐 수 있는 긍정적 속성에도 불구하고, 최근 언론개혁 문제를 두고 대표적인 진보적 문학단체 중의 하나가 보여주는 침묵은 문화권력의 부정적 속성을 여지없이 드러내주고 있다. 이 단체의 회원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조선일보 등 보수 족벌언론들이 주최·주관하는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으며, 현재에도 이들 언론들이 이 회원들과 맺고 있는 경제·사회적 관계가 이들로 하여금 침묵을 강요하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어디 이뿐인가. 언론사와 대학 등이 경쟁적으로 유치해 온 수십 개의 각종 콩쿨은 언론사나 대학의 명성을 드높이거나 돈을 버는 수단으로 전락했을 뿐만 아니라 입시제도와 얽혀 각종 비리를 끊임없이 토해내고 있는 실정이다. 지식인들은 여기에 가담해 권력을 정당화하고, 자신의 지위와 부를 보장받는 사슬의 매듭으로써 기능해 왔다.   문화권력은 이처럼 대중들과 지식인들의 순수한 예술적 욕망을 거세하고, 그들에게 침묵과 순종을 강요함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정당화해 나간다. 그런 가운데 권력의 속성과 동일선상에 서 있지 않은 작품과 견해는 배척되고 터부시된다. 자유로운 상상과 사고,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상호존중은 문화권력의 이 같은 배타적 부정성에 의해 좌절된다. 특정 조직과 개인은 지식인 집단 및 국가와 함께 문화권력의 장(場)을 형성하고, 권력을 행사하며 해당 분야에서 위치를 보장받는다. 그러한 위계 앞에 문화민주주의도, 문화복지도, 삶의 질도 멀어져만 갈 뿐이다.   미술대전도 이 같은 문화권력의 연장선에 있는 제도라고 볼 수 있다. 미술대전의 언저리에서 대중의 생성적 힘을 극대화하고, 창조적 상상력을 자극하며, 문화적 평등과 삶의 질을 높이려는 문화권력의 긍정적 속성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결국 미협과 미협의 그늘 아래서 권위를 보장하고, 보장받는 상층 지식인 및 창작자 집단(주로 미협 임원의 직함을 갖는), 그리고 이를 묵인하고 심지어는 지원해 온 국가와 그것의 법제가 힘을 합쳐 형성해낸 오묘한 문화권력의 태 밑에서 지난 10여년간 미술계 최고의 신인 등용문인 미술대전이 신음해온 것이다. ..........미협으로부터 독립, 미술대전 개혁의 출발점   미협 관계자들을 포함한 일부 미술인들은 심사위원 선정, 심사기준, 심사과정 등 제도적 보완책을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이들은 개혁위원회를 만들고 환골탈태의 자세로 노력하면 해결될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이런 비리가 소수의 미술가들에 의한 우발적이고도 사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중이 제 머리 깎기는 힘든 법이다. 게다가 그들은 머리를 깎을 어떤 도구도 지니고 있지 않다. 도구를 탓하자니 의지의 빈약함이 더 도드라져 보이고, 의지의 결핍보다는 사태를 파악하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눈의 결여가 더욱 커 보인다. 물론,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기 힘들 듯 자신이 속한 단체를 제대로 판단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미술대전의 개혁은 이들의 말대로 자정·자숙·자성의 차원으로는 이뤄질 수 없다. 미술대전이 미협의 임원들을 중심으로 한 소수 미술가들의 손에 의해 새로 거듭날 수 없음은 앞에서 말한 논거들로 인해 이미 증명된 바다. 미협은 권력에 빌붙어 자신의 사적 이익을 취해온 계파 싸움의 우두머리들이 상층을 점하고 있는 조직이며, 권력의 온갖 부정적 속성을 지닌 타락한 문화권력 집단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미협이라는 일개 조직으로부터 벗어나지 않는 한 미술대전의 앞날에는 개혁도 발전도 없다. 그들이 일개 조직에 불과한 이상 문화부와 문예진흥원은 주저없이 그들에게서 미술계 최대의 신인 등용제도를 앗아와야 한다. 1978년 사단법인화 이후 9개 분과, 80여 개 지부를 갖춘 미술계 최대조직이 바로 미협이라는 점은 아무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점이 미술대전을 주최·주관해야 한다는 합당한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문예진흥원은 12년 전 미협에 미술대전 주최·주관권을 위임했듯이 미협으로부터 다시 주최·주관권을 되가져와야 한다. 미협으로부터 되가져온 미술대전을 위해 추진위원회를 공정하고 객관적인 기준으로 구성하고, 투명하게 구성 과정과 심사 결과를 공개함으로써 미술대전이 제대로 된 신인 등용문의 모습을 갖출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거듭 강조컨대 미협으로부터의 독립을 전제로 하지 않은 미술대전의 객관성, 투명성, 공정성, 합리성이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떠한 제도적 보완장치도 현재의 미술협회 아래서는 눈녹듯 사라지고 말 것이다.   ..........미·협·으·로·부·터·의·독·립!!   미협을 정점으로 하는 문화권력의 온갖 부정성이 고스란히 담겨있으며, 부정부패·계파쟁투·밀실심사·금품수수로 얼룩져 있는 현재의 미술대전이 또다시 탁한 비리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을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이는 또한 미술계 개혁의 최대 과제 중 하나가 미술대전 개혁이라고 했을 때, 대중으로부터 외면받으며 남루한 고립의 길을 자초한 미술계 개혁과 발전을 위한 시발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