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민주화운동의 최후 항쟁지였던 구 전남도청사에 민중미술이 걸렸다. 민중미술의 저변을 넓히고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하기 위해 지난달 26일(목) 창립대회를 가진 민족미술인협회 광주지회(회장 박철우, 이하 광주민미협)가 창립기념전 《핀치히터》를 연 것이다.

전시명 ‘핀치히터’(야구용어)는 지정된 타자의 순서를 대신해서 타석에 들어서는 타자를 말한다. 가시적인 폭압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비민주적인 행태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지금, 시원하게 터지는 역전홈런을 기대하는 선언적인 제목이다.

지난달 28일(토) 전시가 열리고 있는 구 전남도청사에서 광주민미협 박철우 회장과 조정태 사무국장을 만나 광주민미협 창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광주민미협의 모태인 광주·전남미술인공동체(이하 광미공)를 해산한 지 근 5년만에 다시 광주민미협을 창립했다. 그 과정을 설명해 달라.

조정태 사무국장과 박철우 회장(왼쪽부터)

박철우 광주민미협 회장(이하 박) :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형식적으로나마 민주주의가 실현됐다. 그러다보니 민중운동의 대상이 자연스럽게 사라지기 시작했고, 뚜렷하게 보였던 이슈가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또 시간의 흐름 속에서 젊고 혈기왕성했던 오월의 작가들도 나이를 먹게 됐다. 좀 더 독립적이면서도 자생적인 변화의 필요성을 자각하고 지난 2002년 광미공을 해산하게 되었다. 당시 회원 중 20여 명은 광주민예총 미술분과 회원으로 남아 광미공의 정체성을 이어왔다.

조정태 광주민미협 사무국장(이하 조) : 광주민미협 창립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가 ‘균형과 연대’이고 다른 하나가 후배들을 위한 ‘토대 마련’이다. 광미공이라는 미술진보단체가 사라지면서 광주미술계는 한쪽 날개를 잃은 새처럼 균형을 잃기 시작했다. 특히 광주민예총 미술분과의 일원으로서의 발언은 한계가 있었다. 전국 각지의 민미협과 연대해 사회적 이슈에 대해 좀 더 효율적이고도 힘있는 발언을 하기 위해 광주민미협 창립을 결정했다. 또 기초예술의 기본적인 토대를 마련하여 젊은 작가들이 마음껏 작업을 할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하기 위해서 창립을 결정하기도 했다. 실제로 광주민미협의 회원은 절반 이상이 매우 젊은 작가들이다. 이들이 좀 더 세련된 방식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 : 결론적으로 아주 간단하게 창립 이유를 말하자면 바로 건강한 미술판을 만들기 위해서다.

이사범, <쌀-지킬 땅, 숨결>

앞으로 할 일이 많을 것 같다.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가?

박 : 광미공이 해체된 후 회원이었던 작가들은 아무래도 조직에서 벗어나 많은 경험을 하다보니 의도와 상관없이 저변이 넓어지고, 타 장르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 그렇게 스스로가 변화된 기존 작가들과 젊은 작가들이 모여 광주민미협의 존재성립 자체인 광주민주화운동 정신을 계승하고 새로운 미술운동의 방향성과 미술계 저변을 넓힐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나갈 것이다.

박철우 회장은 마지막으로 “예술광주가 될 수 있도록 기초예술의 밑바닥부터 다시 끌어올리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라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광주민미협 창립기념전 《핀치히터》는 총 세 개의 섹션으로 이루어져 있다. ‘격정 속에서’, ‘내 안의 창’, ‘강산무진’이 그것이다. ‘격정 속에서’에는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 풍자하는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이사범의 <쌀-지킬 땅, 숨결>에는 식민지 시기부터 지금까지 우리의 땅이 어떤 수모와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를 고발한다. 화면 중앙에서 쌀 한 줌을 쥐고 앉아 있는 초로의 농부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정채열, <손가락 총의 공포>

또 ‘여순사건’을 모티브로 한 여수 작가들의 작품도 눈에 띄는데 그 중 정채열의 <손가락 총의 공포>는 학살의 트라우마를 영원히 간직하고 살아야 하는 당사자들의 현실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밖에도 ‘내 안의 창’에는 일상 속에서 발견되는 자아의 모습, 삶에 대한 근원적인 사유를 담고 있는 작품들을, ‘강산무진’에서는 우리 땅에 스민 정서를 담은 작품들을 만나 볼 수 있다. 전시는 구 전남도청사에서 11월 6일(월)까지 계속된다.